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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주년 광복절 기념사고창독립유공자유족회장 정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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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8.18  09:4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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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주년 8.15 광복절 경축식이 열렸다. 고창독립유공자유족회와 고창군이 동리국악당에서 함께 거행 했으며, 정만기 유족회장의 기념사를 소개한다.

<제76주년 광복절 기념사>
광복절을 맞아 3일 황금연휴 임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참석한 공직자와 지역의 지도자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일반 국민들이야 오늘을 잊지 않고 집에 태극기만 게양해도 칭송 받을 만하지요. 이렇게 일신의 이익이 아닌 공동체의 의미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유족이라고 해서 여러분과 별 차이 없습니다. 연금이라도 받으니 왔겠지 하지만 저를 포함한 유족 참석자 90%는 연금대상자 아닙니다. 자랑스런 조상을 기리기 위해 시간들을 내었을 뿐입니다. 혹시 DNA가 애국심으로 똘똘 뭉쳤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희도 여러분과 같은 인간이랍니다.

매년 무거운 주제를 다룬 기념사를 들었던 분들에게 오늘은 좀 편안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혹시 본인의 성씨가 양반 아닌 분 손들어 보시겠습니까? 예, 아무도 안계시군요.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질문이냐구요.

고창의 독립유공자 96분 가운데 대다수가 양반 이었습니다. 3.1혁명, 임시정부 등 다양한 분야의 투쟁이 있었지만, 의병부문 참가자는 독립유공자의 50%를 넘으며, 이들 중 딱 한 분만 빼고 다 양반이었습니다.

   
 

양반이 뭐 길래 특정 신분에서 독립유공자를 대부분 차지하게 되었을까요? 여기계신 분이 다 양반 후손 아닌 분이 없다니 잘 아실 겁니다. 양반은 여러분처럼 공익을 위한 집단으로 계획 되었습니다. 조선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은 백성의 5%를 국가리더로 삼아 이들에게는 병역, 세금 등을 면제하는 특혜를 주었습니다. 나라의 인재 못자리를 만든 것이지요.

이들에게 요구한 것은 딱 하나, 공부 였습니다. 개인 이익을 위한 상업이나 의료 등에는 그런 혜택을 주지 않고, 나라와 이웃을 위한 공부를 하는 양반에게만 특혜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양반은 때를 만나 과거를 봐서 조정에 출사 하거나, 고향에서 후진양성을 하는 둘 중 하나를 택했습니다, 하지만, 불문율이 있었으니 나라가 난세에 처하면 반드시 의병으로 보답해야 했습니다.

이들을 양반 중에서도 선비라 불렸습니다. 의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스승과 제자들이 학맥으로 함께 일어났습니다. 사제가 된다는 것은 학문은 당연한 것이고, 유사시에는 목숨도 함께하는 좀 무시무시한 조직 이었습니다.

만약 숨는 자가 있다면 비겁자로 낙인찍혀 왕따를 당하고 그 후손은 혼사길도 막혔다더군요.

이걸 아는 일본제국주의는 1909년 9월~10월에 의병이 가장 활발한 전라도에서 호남대토벌작전을 벌립니다. 2천여 의병을 색출해 처형하고 그 가족 등 수만 여 명을 학살 했습니다. 이렇게 조선의 리더그룹을 완전히 뿌리 뽑고 나서야 이듬해인 1910년 8월29에 강제병탄을 공식 선포했습니다. 조선침략완수를 선비집단 학살로 마무리 한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공직자가 100만 명에 이르지만 국민의 2%정도 되니 조선의 양반보다 더 엘리트 그룹이 되었지요. 어느날 제가 공직자 단체의 초청으로 고창의 독립투쟁을 강의 한 적이 있습니다. 애국심으로 충만한 조직 이었습니다. 그 자부심을 잠깐이지만 생각게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공직의 가장 큰 메리트를 물으니 공무원 연금이라는 답변도 있기에 100년 전 선택을 적용 했습니다. 침략한 외세가 공직자들에게 협조하면 기득권을 인정하고, 저항하면 연금도 박탈 할 것이라고 선택을 강요해도 투쟁에 나설 사람 손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그 때, 망설임 없이 손을 든 사람 셋, 나머지 대부분은 순간 서로 얼굴을 보며 손 들 기회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보통 이득 앞에서 망설이게 마련이지요.

그 때만 그런게 아닙니다. 제가 잠시나마 참여했던 신생 공적조직에서도 국민세금으로 운영하니 일하는 조직으로 만들고자 개편을 시도하자 온갖 트집으로 개혁을 저항하는 사례를 겪었습니다. 개인의 이득 앞에 공익이 얼마나 힘 든 선택인가를 경험한 일이었습니다.

여기 앉은 21세기 선비그룹에게도 국가라는 공동체는 끊임없이 요구 할 것입니다. 공익과 사익 사이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 할지를 말입니다.

다시 한 번 리더의 자질을 묻는 일흔여섯번째 광복절입니다.

이만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8월 15일

고창독립유공자유족회장 정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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